경상북도 의성군은 고령화, 감자, 사과로 알려졌지만 속에 숨어 있는 작은 마을들의 이야기는 좀처럼 주목받지 못한다. 그중에서도 단북면은 거의 소개되지 않은 곳이다. 이곳은 예로부터 구릉과 하천이 어우러져 농업이 발달했으며, 지금도 오래된 돌담과 우물이 곳곳에 남아 있는 ‘살아 있는 과거’와도 같은 공간이다. ‘단북’이라는 이름은 단순히 지리적 위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는 사람들의 삶, 전쟁의 흔적, 그리고 느리게 흘러온 시간이 담겨 있다. 본문에서는 단북면의 지리적 특성과 지명 유래, 일제강점기 변화, 전쟁의 영향, 그리고 현재까지 이어지는 마을의 모습까지 정리해 보며 우리가 잊고 지낸 마을의 가치를 재발견해 본다.
단북면의 지리적 특성과 자연환경
단북면은 의성군 북부에 자리 잡고 있으며, 낙동강 지류와 연결된 저지대와 완만한 산지가 어우러진 지역이다. 마을 중심에는 단밀천이 흐르며, 그 주변으로 논과 밭이 발달해 있다. 해발은 평균 250~350m 수준이며, 겨울에는 바람이 많이 불고 여름에는 습기가 많아 토양이 비옥하다는 평을 받는다. 이 지역은 특히 ‘홍로’ 사과 재배로 알려져 있고, 가을이면 논과 과수원이 붉은색으로 물든다. 단북면은 안개가 자주 끼는 지역 중 하나로, 주민들 사이에서는 ‘물안개 마을’로도 불린다
‘단북’이라는 지명의 유래
‘단북(丹北)’은 ‘붉은 흙(丹)’의 북쪽 지역이라는 의미로, 실제로 단북면 일대는 황토가 풍부한 지역이다. 조선시대에는 이 일대를 ‘단지곡’이라 불렀으며, 이는 ‘붉은 흙이 많은 골짜기’라는 뜻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18세기 고지도인 《여지도서》에는 ‘단지리(丹地里)’라는 표기가 발견되며, 이를 통해 마을 이름이 자연에서 유래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단북면의 북쪽에는 ‘마북산’이라는 야산이 있는데, 이는 ‘말이 북쪽으로 향하는 산’이라는 전설이 내려오는 산으로, 마을 이름의 배경으로도 전해진다.
일제강점기, 마을의 변화와 억압
단북면은 일제강점기 시절에도 행정 통폐합과 식민 자원 수탈의 영향을 피하지 못했다. 특히 1935년경에는 ‘상단리’와 ‘하단리’가 행정적으로 합쳐지면서 현재의 단북면이 형성되었다. 일제는 이 지역의 황토 토양을 도자기 원료로 활용하기 위해 일부 지역에서 흙을 채굴했고, 이로 인해 지금도 ‘사기골’이라 불리는 마을에는 구덩이와 절개지가 남아 있다. 당시 마을 주민들은 일제의 강제 동원으로 인해 석회 생산과 농사 외적인 노동에 종사해야 했으며, 그 기록은 현재도 주민들의 구술로 남아 있다.
한국전쟁과 단북면의 흔적
한국전쟁 당시, 단북면은 직접적인 전투지역은 아니었지만 후방 보급로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군사적 통행이 빈번했다. 특히 마을 중간을 지나는 단밀천 다리는 군 차량의 통로로 사용되었고, 당시 폭격을 피하기 위해 주민들은 인근 ‘밤나무골’로 피신했던 기록이 있다. 지금도 그곳에는 사용되지 않는 동굴형 방공호가 남아 있어 전쟁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주민 이○○(89세) 씨는 “그때는 다들 아무 말 없이 물동이에 짐 싸서 들고 산으로 올라갔다”고 회상했다.
현재의 단북면, 그리고 사람들
현재 단북면에는 약 320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으며, 70% 이상이 65세 이상의 고령자다. 농업은 여전히 주요 생업이며, 특히 가을철에는 사과 수확 철을 맞아 외부 인력이 마을로 유입된다. 매년 10월에는 ‘단북 사과 따기 체험행사’가 열려 인근 도시 초등학생과 가족 단위 관광객이 찾아온다. 이 행사에서는 사과 수확 체험 외에도 전통 사과잼 만들기, 장작불 사과구이 체험 등이 진행되어 인기를 끌고 있다. 마을 회관 옆에는 옛 도장간을 복원한 ‘단북 생활유물전시관’이 있어 마을의 과거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단북면을 방문하는 방법과 여행 팁
의성읍에서 단북면까지는 차량으로 약 30분이 소요되며, 국도 28호선을 따라 진입하면 된다. 대중교통은 하루 2회 정도 운행되는 농어촌버스를 이용하면 되며, ‘단북면사무소’ 정류장에서 하차하면 마을 중심부에 도착할 수 있다. 인근에는 ‘단지약수터’, ‘마북산 숲길’, ‘폐교된 단북초등학교’ 등이 조용한 여행지로 추천되며, 특히 봄철에는 야생화 군락지로도 사진작가들이 찾는 명소가 된다. 식당과 카페는 없지만, 주민이 운영하는 마을 쉼터에서 사과즙과 떡, 전통차를 맛볼 수 있다
의성군 단북면. 깊고 조용한 마을
단북면은 조용하지만 깊다. 붉은 흙 위에 쌓인 수십 년의 기억과, 그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는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가 이 마을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겨야 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이 마을도, 이 땅도 대한민국의 역사이며 우리의 삶이기 때문이다. 사라지기 전, 잊히기 전에 기록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일일지도 모른다.
'경상북도 조용한 마을'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고령군 개진면, 낙동강 옆 숨은 마을이 간직한 오래된 시간 (0) | 2025.07.11 |
---|---|
🏡 안동시 임하면, 수몰의 기억 위에 피어난 마을의 시간 (0) | 2025.07.11 |
🏡 문경시 마성면, 돌산 아래 숨어 있던 마을의 역사 (0) | 2025.07.10 |
🏡 예천군 용문면, 절 이름에 숨은 마을의 진짜 이야기 (0) | 2025.07.10 |
🏡 청도군 각북면의 숨은 역사, 이름에 담긴 오래된 삶의 이야기 (0) | 2025.07.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