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조용한 마을

🏡 예천군 용문면, 절 이름에 숨은 마을의 진짜 이야기

with-fam3203 2025. 7. 10. 12:03

예천은 경북 내륙에서도 유난히 고요하고 전통적인 분위기를 간직한 지역이다. 특히 용문면은 그 이름 자체에서부터 깊은 불교적 기운이 느껴지는데, 이는 단순히 ‘용문사’라는 유명한 사찰 때문만은 아니다. 이 지역은 고려 시대부터 ‘용이 머문 자리’라는 전설과 함께 여러 고찰과 전통문화가 살아 있었고, 지금도 마을 구석구석에는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예로부터 선비와 관료가 많이 배출되어 우리나라의 10승지 가운데 한곳으로 정감록에 기록되어 있다.

지도상에서는 흔히 지나치기 쉬운 용문면이지만, 이 마을에는 천 년이 넘는 시간이 겹겹이 쌓여 있다. 이번 글에서는 용문면이라는 이름의 기원부터, 전쟁을 거쳐 지금까지 이어져 온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조용한 마을에 스며든 전통을 하나씩 들여다보려 한다.

경상북도 예천 용문면 천녀고찰 용문사


용문면의 지리적 특성과 자연환경


용문면은 예천군 남쪽에 위치하며, 해발 200~400미터의 구릉지형을 중심으로 작은 마을들이 분산되어 있다. 면 전체가 낙동강 지류를 따라 펼쳐져 있어 수자원이 풍부하고, 마을 뒤편에는 문경과 연결되는 능선이 이어진다. 특히 용문면은 사계절 중 봄에 안개가 자주 끼는 지역으로,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는 ‘구름마을’이라고도 불린다. 논과 밭은 산지에 계단식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오래전부터 고추와 콩 재배가 성행했다.

 


'용문'이라는 이름의 유래


‘용문’이라는 이름은 지역의 대표 사찰인 ‘용문사(龍門寺)’에서 유래되었다고 알려져 있으나, 그보다 더 오래된 전설이 이 마을에 전해진다. 마을 북쪽에 위치한 '용혈곡(龍穴谷)'에는 용이 승천한 자리에 남은 바위가 있으며, 이 바위를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실제로 고려 말기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이 지역이 ‘용문곡’이라 기록되어 있어, 이미 천 년 가까운 지명을 간직한 셈이다. 주민들은 지금도 비가 오기 전날이면 그 바위 주변에 개구리 떼가 몰려든다고 전한다.

 


일제강점기와 행정 구역의 변화


일제강점기 당시 용문면은 예천군 내에서도 비교적 많은 리(里)가 통폐합된 지역이었다. ‘도암리’, ‘은풍리’, ‘죽림리’ 등은 원래 개별 마을이었으나 면 단위 개편 이후 현재의 행정명으로 묶였다. 일제는 이 지역의 삼림 자원을 수탈하기 위해 일부 산지를 벌목했고, 당시 산속에서 살아가던 이들이 마을로 이동하는 이주 현상도 발생했다. 지금도 용문면 도암리 뒤편에는 일제강점기 때 벌목 당시 사용된 좁은 기찻길 흔적이 남아 있다.


한국전쟁과 마을의 기억


한국전쟁 당시, 용문면은 문경과 상주 방면의 보급로와 가까워 한때 군부대가 주둔했던 곳이기도 하다. 마을 회관 인근에 있는 옛 창고 건물은 당시 군에서 사용하던 군량미 창고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는 리모델링되어 마을 창고로 쓰이고 있다. 6.25 당시 피난민들이 몰려들어 교회 옆 언덕에는 천막촌이 형성되었고, 주민 박○○(92세) 어르신은 “미군 군화를 처음 본 것도 그때”라고 기억을 떠올렸다.

 


지금의 용문면, 그리고 사람들

 

용문면에는 현재 약 410명의 주민이 거주 중이며, 그중 65세 이상 고령자가 약 70%에 달한다. 매년 가을에는 ‘용문 들녘 가을걷이 축제’가 개최되어 인근 초등학생들과 귀촌인들이 함께 참여한다. 주민들은 함께 송편을 빚고, 농기구 전시와 옛 농사 체험을 진행하며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마을 입구에는 오래된 향나무와 벚나무가 심어져 있어 봄이면 작은 벚꽃길이 형성된다.

황금들녘


용문면을 방문하는 방법과 팁

 

용문면은 예천읍에서 차량으로 약 25분 거리이며, 문경 방면에서는 국도 34호선을 이용하면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예천 터미널에서는 하루 4회 농어촌 버스가 운행되며, 용문사 입구나 도암리 정류장에서 하차가 가능하다. 인근에는 용문사 외에도 고려시대 석탑이 남아 있는 ‘도림사지’ 터가 있어 역사적 탐방이 가능하다. 단, 주말에는 버스 배차 간격이 길기 때문에 차량 이용이 권장된다.


용문면, 절 이름에 숨은 마을

용문면은 절 이름만 남은 마을이 아니다. 이곳에는 전쟁과 침탈의 시대를 견뎌낸 사람들, 전설처럼 이어진 바위와 마을 이름, 그리고 지금도 조용히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가 함께 있다. 애써 설명하려 하지 않아도, 마을 곳곳에 남아 있는 돌계단 하나, 벚나무 한 그루가 이 지역의 시간을 말해준다. 우리가 이런 마을을 기록하고 남겨야 하는 이유는 단 하나, 잊히기 전에 기억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