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군은 흔히 청량산,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춘양목 같은 키워드로 알려졌지만, 그 속에는 전혀 주목받지 못하는 마을들이 숨어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명호면이다. 이름조차 낯선 이 마을은 해발 300미터 이상의 고지대에 형성된 산촌 마을로, 외부인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한국의 진짜 시골’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명호면은 단지 외진 곳이 아니다. 이 마을에는 조선 후기 산간 개척사의 흔적, 일제강점기 가마터 유적, 폐교된 분교, 그리고 아직도 장작불을 사용하는 가정이 남아 있는 살아 있는 시간이 존재한다. 이 글에서는 봉화군 명호면의 지리, 지명 유래, 역사, 전쟁과 산업화의 흔적, 그리고 지금의 삶에 대해 정리해 본다.
명호면의 지리적 특성과 자연환경
명호면은 봉화군의 동남부에 위치하며, 해발 350~600m에 달하는 산지에 둘러싸여 있다. 북쪽으로는 봉성면, 남쪽으로는 영주시 부석면과 경계를 이루며, 서쪽에는 청량산 자락이 맞닿아 있다. 대부분의 마을은 산비탈에 자리를 잡고 있으며, 주요 마을로는 ‘고계리’, ‘두포리’, ‘도천리’ 등이 있다. 마을 사이로는 작은 계곡과 임도들이 이어져 있고, 겨울에는 적설량이 많아 외부와 단절되는 날도 있다. 자연환경이 수려하고 공기가 맑아 최근 몇 년 사이 ‘자연 휴양형 귀촌지’로 주목받기 시작했지만, 아직도 대부분은 전통적인 농업과 임업 중심의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명호’라는 지명의 유래
‘명호(明湖)’라는 이름은 본래 ‘맑은 호수’라는 의미를 지니지만, 실제 이 지역에는 큰 호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지역 주민들에 따르면, 예전에는 도천리 일대에 큰 습지와 계류가 있어, 안개가 피어오르던 모습에서 ‘명호’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또 다른 설에서는 ‘명(明)’은 빛날 명, ‘호(戶)’는 집을 뜻하는 한자로 해석되어 ‘밝은 마을’이라는 의미로도 쓰였다고 한다. 조선 후기 문헌인 《여지도서》에는 ‘명호천(明湖川)’이라는 작은 하천명이 등장하며, 이는 마을 이름의 어원을 유추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
일제강점기와 산촌 산업의 흔적
명호면은 일제강점기 당시에도 오지 마을로 분류되었으나, 산림 자원이 풍부해 조선총독부의 산림 조사와 벌목 대상 지역으로 지정되었다. 특히 ‘두포리’ 일대에는 송진 채취와 목재 수확을 위해 개간된 임도가 지금도 일부 남아 있으며, 1930년대에는 일본 상인들이 운영하던 송진창도 존재했다. ‘고계리’에는 소규모 가마터가 운영되었고, 이곳에서 생산된 질그릇은 춘양면 장터로 유통되기도 했다. 하지만 1940년대 이후 일본 본토 물자 집중 정책에 따라 대부분의 산업 기반이 철거되었고, 현재는 폐터와 송진 저장고 터만이 남아 있다.
전쟁과 이주, 그리고 폐교의 역사
한국전쟁 당시 명호면은 후방 지역으로 직접적인 피해는 없었지만, 전후에 국가 주도의 농촌 재정비 정책으로 인해 여러 마을이 통폐합되었다. 특히 ‘고계분교’, ‘도천분교’는 1970년대 초까지 운영되다가 학생 수 감소로 폐교되었고, 지금은 일부 교사만 남아 창고나 가축우리로 사용되고 있다. 당시 분교에 다녔던 주민 김○○(82세) 씨는 “여섯 명이 한 반이었고, 겨울엔 아궁이 하나로 학교 전체를 데웠다”고 회상한다. 현재 명호면 전체에는 초등학교 한 곳도 남아 있지 않으며, 학생들은 봉화읍이나 춘양면까지 통학해야 한다.
지금의 명호면, 그리고 사람들
2024년 기준 명호면의 전체 인구는 약 460여 명이며, 70% 이상이 고령자다. 농사는 대부분 자급자족 형태이고, 일부 주민은 밤나무, 더덕, 고사리 등 임산물 채취로 생계를 유지한다. 최근에는 귀촌인이 폐가를 리모델링해 전통 한옥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거나, 주말농장을 개설해 도시인들을 초청하는 사례도 생기고 있다. 매년 가을에는 ‘명호 작은 산골 장터’가 임시로 열리며, 마을에서 만든 장아찌, 산나물, 솔잎술 등을 판매한다. 이 장터는 주민들이 직접 운영하며, 외지인과의 소통 창구로 기능하고 있다.
명호면을 방문하는 방법과 산골 마을 여행 팁
봉화읍에서 명호면까지는 차량으로 약 35~40분 소요되며, 도로 사정이 좋지 않기 때문에 겨울철에는 스노타이어 장착이 권장된다. 대중교통은 하루 2회 농어촌버스가 운행되며, ‘고계리 입구’ 또는 ‘명호면사무소’에서 하차 가능하다. 추천 코스로는 도천 계곡 따라 걷기, 폐분교 터 방문, 산나물 체험농장, 명호 산골 장터 방문 등이 있으며, 최근에는 ‘명호 숲속 힐링길’이 SNS상에서 입소문을 타고 있다. 여행 시 도시의 편의시설은 없기 때문에 도시락이나 간식은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봉화 면호면, 사라지지 않는다.
명호면은 도시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시간의 속도로 흘러간다. 느리고, 조용하고, 오래된 이 마을은 지금도 과거와 현재가 겹쳐 있는 공간이다. 폐교된 교실, 계곡 옆의 정자, 그리고 말없이 산나물을 캐는 노인의 뒷모습은 이 마을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가 이런 마을을 기록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한 ‘시골 여행지’가 아닌, 한국의 시간과 뿌리를 지키기 위함이다. 명호면은 사라지지 않았다. 단지, 너무 조용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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