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주군 수륜면, 장터와 사찰이 공존하는 마을의 오래된 시간
성주는 ‘성주 참외’로 널리 알려진 지역이지만, 그 중심부를 벗어나면 조용한 시골 마을들이 이어진다. 수륜면은 성주군 남서부의 깊은 골짜기 속에 자리한 마을로, 오랜 세월 동안 불교문화와 재래장터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지금은 대도시로부터 멀어진 이 마을이 잊혀진 공간으로 남아버린 듯하다. 하지만 수륜면에는 여전히 고즈넉한 사찰, 폐장된 장터의 흔적, 돌담길을 따라 남은 옛 담화와 같은 수많은 삶의 조각들이 남아 있다. 본문에서는 수륜면의 지리, 지명의 유래, 장터 문화의 흥망, 전쟁과 고령화의 흔적, 그리고 현재 이 마을이 어떻게 시간을 이어가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수륜면의 지리적 특성과 자연환경
수륜면은 성주군의 남서쪽 끝자락에 위치하며, 남쪽으로는 고령군, 서쪽으로는 경남 합천군과 경계를 이룬다. 면 전체가 해발 200~500m의 산지로 둘러싸여 있으며, 중심부에는 낙동강의 지류인 ‘가천’이 흐른다. 이 지역은 일조량이 길고 기온 차가 커 참외 재배에도 유리한 환경이지만, 넓지 않은 평야 때문에 대부분의 농가는 자급자족 형태의 소규모 농업을 지속해 왔다. 봄이면 마을 뒷산인 ‘가야산 자락’에 진달래가 피고, 가을에는 황금색 들판과 억새가 장관을 이룬다. 수륜면은 지금도 ‘느린 시간의 마을’로 불릴 만큼 자연의 변화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곳이다.
‘수륜’이라는 지명의 유래
‘수륜(首輪)’이라는 지명은 다소 특이한 형태로, 전설과 실제 기록이 엇갈려 전해진다. 하나의 설에 따르면 ‘수륜’은 불교에서 전하는 ‘윤회의 첫 고리’를 의미하며, 이는 이 지역에 많은 사찰이 있었던 것과 관련이 있다. 또 다른 설에서는 ‘물이 돌아 흐르는 지형’이라는 뜻에서 ‘수륜(水輪)’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세종실록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이 지역이 ‘수륜장’으로 불렸으며, 매달 초하루에 장이 서던 중요한 교역지였음을 보여준다. 지명의 기원은 명확하지 않지만, 분명한 건 ‘수륜’이라는 단어에 이 마을의 정체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사실이다.
장터 문화의 흥망과 수륜장의 흔적
수륜면은 1960~1980년대까지 성주군 남부에서 가장 큰 오일장이 열리던 곳이었다. 이곳에서는 참외, 들깨, 고추만 아니라 직접 만든 맷돌, 삼베, 나무 숟가락 등이 거래되었고, 장날이면 인근 고령군, 합천군에서까지 상인과 주민들이 몰려들었다. 수륜초등학교 옆 장터 골목에는 지금도 옛 장옥이 일부 남아 있으며, 그 시절 장터의 중심이었던 ‘수륜 장터 쉼터’는 현재 낡은 목조건물로 남아 있다. 1990년대 이후 장터는 서서히 사라졌고, 지금은 마을 노인회관에서 작은 직거래장이 간헐적으로 열리고 있다.
전쟁과 산업화의 그림자
6.25 전쟁 당시 수륜면은 직접적인 전선은 아니었지만, 인근 고령 방면의 군사 이동로 역할을 하면서 주민들의 피난과 혼란이 있었다. 당시 수륜사(현 존암사) 인근에는 군 병력이 주둔한 흔적이 있으며, ‘상수리 골’에는 지금도 방공호 흔적이 남아 있다. 산업화 시기에는 많은 젊은이들이 도시로 떠나며 인구는 급격히 감소했고, 폐가가 늘어났다. 마을 어귀에 자리한 폐교된 ‘수륜중학교’는 지금은 주민센터와 복지관으로 쓰이고 있으나, 교정 한쪽에는 아직도 오래된 시소와 철봉이 녹슬어 있다.
지금의 수륜면, 그리고 사람들
수륜면은 현재 약 62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으며, 65세 이상 고령자가 75%를 넘는다. 농업 외에는 별다른 산업이 없고, 면 전체에 초등학교는 1곳, 중학교는 폐교 상태다. 매년 봄에는 ‘수륜면 봄맞이 장터’가 열려, 소규모 농산물 판매와 함께 주민 장기 자랑, 민속놀이 대회가 열린다. 최근에는 귀촌을 선택한 30~40대 부부들이 빈집을 리모델링해 민박이나 체험농장을 운영하면서, 마을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수륜면사무소 뒤편에는 마을회관과 전통 장독대가 함께 있는 작은 마을 쉼터가 조성돼 있어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
수륜면을 방문하는 방법과 여행 팁
성주읍에서 수륜면까지는 차량으로 약 30분이 소요되며, 국도 30호선을 따라 고령 방면으로 진입한 뒤 지방도 914호선을 이용하면 된다. 대중교통은 성주 터미널에서 하루 2~3회 농어촌버스가 운행되며, ‘수륜면사무소’, ‘수륜초등학교’ 앞 정류장에서 하차할 수 있다. 추천 코스로는 존암사 산책, 수륜 장터 옛길 걷기, 마을회관 앞 장독대 포토존 등이 있으며, 전통 장 담그기 체험은 사전 예약 시 가능하다. 조용하고 느린 마을 여행을 원하는 이들에게는 단연 추천할 만한 시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