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은 한때 석탄 산업의 중심지였다. 지금은 레일바이크와 아리랑, 자연경관으로 잘 알려졌지만,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이 지역은 광부들의 땀으로 채워진 곳이었다. 정선군 여량면은 이 산업의 그림자 속에서 조용히 자리를 지켜온 작은 면 단위 마을이다. 관광지로 개발된 곳들과는 달리 여량면은 탄광이 사라진 이후 거의 주목받지 못한 마을이다. 그러나 이곳에는 여전히 광산마을의 흔적, 철도역의 플랫폼, 폐광 이후의 이주 흔적, 그리고 지금도 남아 있는 주민들의 삶이 고스란히 존재한다. 이 글에서는 정선 여량면의 지리적 특성, 지명의 유래, 탄광 시대의 기억, 산업 침체 이후의 변화, 그리고 현재 이 마을이 어떻게 시간을 견디고 있는지를 기록해 본다.
여량면의 지리적 특성과 자연환경
여량면은 정선군의 북서쪽에 위치하며, 태백산맥의 줄기를 따라 깊은 계곡과 산지로 둘러싸여 있다. 해발 300~700m 사이의 산악 지형 속에 자리한 이 마을은, 강원도 시골 특유의 고립된 구조를 지니고 있다. 면을 따라 흐르는 조양강은 여량역 앞을 지나며 마을의 중심부를 감싼다. 예전에는 철도 주변으로 상권과 주거지가 형성되어 있었지만, 현재는 대부분이 비어 있거나 폐가로 남아 있다. 겨울에는 폭설로 차량 통행이 어려운 날도 있으며, 여름에는 습한 산 기운과 강바람이 마을을 덮는다. 자연이 거칠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리듬은 여전히 분명하다.
‘여량’이라는 지명의 유래
‘여량(汝良)’이라는 이름은 조선 후기 지방 행정 개편 때부터 사용된 것으로, 정확한 유래는 뚜렷하지 않다. 일부 주민들은 ‘물이 좋은 마을’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고 전하지만, 이는 정확한 사료에 근거한 해석은 아니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이 지역이 ‘정선현 여량방’이라 명시되어 있으며, 이후 군 면 개편을 통해 여량면으로 정식 편입되었다. 지명의 어감은 부드럽지만, 그 속에 담긴 마을의 삶은 거칠고 험난했던 시대의 흔적과 맞닿아 있다.
현재 남아있는 여량역(餘糧驛) 은 소재지 지명인 북면 여랑리의 이름을 따, 개업 당시의 역명이었고, 현재는 아우라지역으로 개명하였다. 두 개의 물줄기가 이 곳에서 서로 어우러지며 합류한다는 의미.
역 인근 지역은 정선 아리랑 본 고장으로 알려져 있다.
탄광 시대의 여량면과 광부들의 삶
1950~1980년대 사이, 여량면은 실제로 탄광 마을의 기능을 했다. ‘여량광업소’라는 이름의 소규모 탄광이 있었으며, 많은 주민이 이곳에 근무하거나 인근 태백·사북 광업소로 출퇴근했다. 당시 여량역은 석탄 수송의 중간 거점으로, 밤낮없이 화물열차가 드나들었다. 여량시장에는 광부들이 퇴근 후 찾던 막걸릿집과 고깃집들이 있었고, 겨울이면 석탄으로 난방하던 풍경이 흔했다. 지금은 그 탄광도, 열차도, 시장도 대부분 사라졌지만, 마을 곳곳에 탄가루가 스며든 벽돌집과 석탄 운반용 좁은 철도 자갈길이 여전히 남아 있다.
폐광 이후의 마을 변화
1980년대 후반 이후 석탄 산업이 쇠퇴하면서 여량면도 빠르게 변했다. 여량광업소는 폐광되었고, 인근 광업소에 다니던 노동자들도 퇴직하거나 타지로 이주했다. 학생 수는 급감했고, 여량초등학교의 분교 두 곳은 폐교되었다. 여량역 주변의 상가는 하나둘 문을 닫았고, 현재는 폐건물과 빈 점포가 대다수를 차지한다. 여량역 자체도 현재는 정기 운행이 줄어든 상태이며, 관광열차 몇 편만 정차하고 있다. 과거의 활기찬 마을은 사라졌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이곳에 머무르며 조용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지금의 여량면, 그리고 사람들
여량면의 현재 인구는 약 780명으로, 대부분이 고령자다. 농업보다는 임업과 자급자족 중심의 삶을 유지하고 있으며, 일부 주민은 주말마다 장을 보기 위해 정선읍으로 이동한다. 최근에는 빈집을 개조해 소규모 민박이나 ‘철길 따라 걷기’ 체험 코스를 운영하는 귀촌인들도 등장했다. 마을에서는 매년 가을마다 ‘여량 추억의 장터’라는 이름의 소규모 플리마켓이 열려, 지역 특산물과 수공예품을 판매한다. 주민들에겐 그 장터가 마치 과거 여량역 앞 시장의 축소판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여량면을 방문하는 방법과 철길 마을 탐방 팁
정선읍에서 여량면까지는 차량으로 약 20분, 태백에서 접근하면 약 35분 정도 소요된다. 여량역(아우라지역)은 아직 운영 중이며, 정선선 일부 열차가 하루 2~3회 정차한다. 여량역 인근에는 ‘폐선 걷기 체험 코스’와 옛 막걸릿집 벽화, 폐간이역터 등이 관광 코스로 조성되어 있다. 철길 따라 걷기를 원한다면 걷기화 착용은 필수이며, 여름철에는 벌레가 많아 긴 바지 착용을 추천한다. 인근에는 주민이 운영하는 작은 찻집과 책방도 있다.
여량면 철길 마을의 기록
여량면은 지금은 조용하지만, 분명히 살아 있다. 한때는 석탄을 나르던 땀의 도시였고, 지금은 그 시간을 지키는 마을이다. 우리는 산업의 변화와 함께 사라진 마을들을 너무 쉽게 잊고 지낸다. 그러나 여량면처럼 조용히 살아가는 곳을 기록하는 것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진짜 변화를 기록하는 일이다. 여량면은 어쩌면 마지막으로 남은 ‘진짜 시골의 철길 마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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